엘리자베스 홈즈- 어느 천재 여인이 개발한 의료개혁 방안

http://youtu.be/9DHeIz9VCUY

신은 어쩌면 엉터리 난장판 헬스케어 시스템이 망가뜨리는 미국을 구하라고 휴머니즘에 바탕한 확고한 철학과 엄청난 지적 재능을 지닌 천재를 보내주셨는지도 모르겠다. 스탠포드에서 나노공학과 화학을 공부하던 엘리자베스 홈즈라는 이 아름답고 천재적인 여성은 19세의 아직 어린 나이에 자신의 사명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확고히 하고 학교를 중퇴한다. 이후 십일년간의 연구를 거쳐, 기존의 혈액검사를 통한 질병의 진단과정에 소요되는 수백불의 비용과 여러 날의 시간을 혁명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는 결과를 실현시켰다. 천문학적인 의료비용으로 도탄에 빠진 미국시민들을 구할 수 있는 그녀가 창안한 방법은, 혈액검사를 할 수 있는 알약만한 키트를 만들어 낸 것. 의사의 프리스크립션을 받아 동네 약국에서 이 키트를 사용해 약사에게 피를 한방울만 채혈하게 함으로써 필요한 검사 결과를 아주 짧은 시간에 아주 합리적인 가격에 할 수 있게 되었다. (혈액검사 랩이나 의사마다 자기들 마음대로 부르는 수백불이 아니라, 명백하게 공시되어 있는 합리적인 검사가격) . 고액의 의료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억울하게 병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설령 의료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 하더라도, 비용이 사기에 가깝게 많아 파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까운 예를 들면, 작은 녀석, 고열과 체증으로 급하게 병원을 찾았을 때, 닥터가 응급실로 보내버려 반나절 응급실에서 시티며 어러가지 검사를 하다 별일 아니라고 밤늦게 퇴원했는데, 병원에서 보험회사에 청구한 비용은 만불이 넘었다. 알고보니 체증과 변비였는데, 그거 알아내는데 드는 비용이 만불이라니….
자신이 하는 일은, 인간이 자신의 목숨을 재때에,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정당하게 지킬 수 있는 인권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라는 그녀의 철학은, 무척 따르던 삼촌을 병으로 억울하게 잃어버린 자신의 경험에 바탕하고있고,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병원을 들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모순과 비합리성을 교정하고자 하는 그녀의 시도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이 “자신의 몸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제시간에 아는 것은” 인간의 권리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그녀의 철학에, 나는 서른 한 살 그녀의 지지자가 된다. 테라노스라는 바이오 벤쳐기업을 만들고 ceo가 되고, 자신의 계획을 실행함으로서 자산 45억에 이르는 갑부가 되고, 포브스 선정여성갑부 세계 1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홈즈는 아직도 미혼이다. 내가보기에는 거의 니콜 키드만을 능가하는 미모이고 지력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이지 신이 내린 사람인데, 힐러리 클린턴보다 더 대통령 후보에 적합한 인물이라 생각. 엘리자베스 만쉐이…

고즈넉한 반달만-태평양과 대면하다 July 2015

샌프란을 출발해 남쪽으로  한시간 가량 을 달려 반달만에 닿았다.

이름도 상냥한 반달만…

반달만 가는 국도

반달만 가는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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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만과 인사를 하려면 절벽 위에 위치만 리츠 칼튼 호텔을 통과하여 없는 길을 헤치고 에스칼프먼트를 하강하여 모래사장에 닿아야 한다. 반달만을 향해 열심히 길을  걷다 눈이 마주친, 방갈로형 객실 앞에 소담히 피어 나를 반긴 하얀 수국.

삼총사 반달만 정복 준비완료

삼총사 반달만 정복 준비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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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한 대기와 시원한 파도소리는 눈과 귀를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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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나타난 말 위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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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작가혼이 세겨놓은 작품

두번째 면허증 갱신. September 2015

미국와서 면허증을 두번째로 갱신한 폭우 주의보 내린 오늘.
면허증 새로 발급 받노라 세시간을 관공서에 인질로 잡혀있는 건
결코 재미하고는 거리가 멀다. 허무하여라 나의 하루… 라고 생각하며
다음 갱신 연도는 6년후 2021년이라고 찍힌 서류를 받아 든 순간,
지난 15년간 뭘했지라는 질문이 뇌리를 꼬집고 지나가는…..
.
.
간단한 숫자로 지난 15년을 정리해보니.
아들을 둘을 낳았고, 절반쯤 키웠군.
면허증은 네번을 갱신했네. 한번은 한국에서, 한번은 캐나다에서, 헐…두번은 미국에서..
두개 나라의 영주권을 취득했고, 국적도 하나 더 만들었고
네번 이사 다닌 거리를 합하면 지구 반바퀴는 넘을듯 하고,
또 세번째이자 마지막인 학위를 마쳤다.
그간 바꾸어가며 탄 차는 네대이고, 그 중 세대는 집앞에 주차되어 있다.
체중이 늘어난 파운드 수는 두자리.. 성과가 제일 높네.

새마을 운동과 일련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장 드라이브속에서 성장한 70년대 생이라
그 영향이 컸던지, 늘 향후 5년간 무엇을 할 것인가 계획을 세워놓고 달성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던 것 같다. 인생이 단순한 20대 중반까지는 그렇게사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5개년 계획이 그렇게 내 맘대로 되어 주지 않았고…
미국에와 이리 살고 있는 것은 애초에 계획에 없었고, 캐나다까지가 내 청사진이었을 뿐.
내 나이가 몇인지도 늘 헷갈리는 지금은, 아이들의 5년 후만 그려질 뿐
5년 후에 나는 뭘 하고 있을지 계획은 오리무중….

비가 한 며칠 더 내려주면 좋겠다..

여럿이 함께.. 천천히 느릿느릿 – 미국이라는 시스템

한국에 있을 때 누군가로 부터 들은 농담이 있는데, 그것이 농담이 아니었음을 10여년을 살아본 다음에야 실감하게 된다. 내용은 이러하다. 한 가난한 한국 유학생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며 방학을 이용해 생활비를 벌어보고자, 집짓는 공사팀에 들어가 페인트칠을 담당하게 되었더란다. 사람들이 상당히 느긋하고 천천히 일을 하길래, 또 영어가 능숙한 것도 아니라 그들과 같이 농담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뭣해 혼자 열심히 새마을 정신으로 남들 놀 때 혼자 그날 분량의 일을 다 해치웠더란다. 으쓱해하며 칭찬을 기다렸으리라 아마도. 그랬더니 공사팀을 이끄는 보스가 와서 임금을 미리 지불하고 내일부턴 나오지 말라더라는 것이다. 이유인 즉, 팀 전체가 일할 분량을 혼자서 다 해벼렸기 때문에, 자기들 계획에 차질이 생겼으며, 다른 팀원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 한국에서 스물 몇 살 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땐 정말 농담이라 생각했다.

JOSE DIGGING

생활인으로 살면서 객체로서 느끼게 되는 미국이란 나라는 전체적으로 느리고, 뭔가가 엉성한 구석도 많고, 특히 병원을 방문하면서 느끼게 되는 의료게 전반에 대해 느끼는 그 답답함과 황당함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러나 한걸음 다가가 주체로서 그 시스템을 속속들이 경험하다 보면, 그 관리와 유지의 엄격함과 철저함에 또 다시 고개가 흔들어진다. 적어도 학부모로서 내 아이가 공부하는 과정을 들여다 보면서 알게된 엄격함과 철저함, 또 학생신분으로서 직접 겪은 교육과 훈련과정의 엄격함, 마지막으로는 그 교육제도를 이끌어가는 일원으로서 역할을 잠시 하면서 들여다본 것도 그러하다. 그런데 왜 동일한 사회를 경험하는 데 있어서 주체와 객체로서 입장 차이에 따른 이러한 괴리가 생겨날까…

심리학자 또는 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해 박사공부를 하는 동안, 이 사회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훈련받는지를 경험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들게 된 의문은 이러하다. “이렇게 철저하게 훈련받고 교육받은 전문가들이 막상 일터에 나와서는 왜 그따위로 밖에 일을 하지 않는 걸까? 분야를 막론하고 말이다. 수퍼비젼을 받는 훈련과정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누군가의 감독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프랙티스가 가능해 졌을 때는, 라이센스 유지할 정도의 최소한의 것만 하면서 그간의 노고를 보상받으려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문가들의 일하는 모양새는 엉성하다. 적어도 휴스턴에서는 없지 않을까.. 미국 생활 초기에, 남편의 회사에서 아웃소싱한 로펌에서우리가족의 비자문제를 늑장처리해 국경을 넘을 때마다 곤경에 처한 경우가 몇번이었으며, 신경치료를 잘못해 크라운을 두번이나 교체하고도 결국엔 이를 뽑아야 할 지경에 이르는 8년의 시간 동안 문제의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해 찾아 다녔던 치과의사의 종류와 수가 무려 몇 명이었던가… 그토록 다양한 치과의사의 세부 전공분야가 존재함을 그 때 알게 되었다. 일차적인 치과문제를 전담하는 일반 치과의가 있고, 교정만 전문으로 하는 치과 의사가 있고, 신경치료만 하는 전문의가 있으며, 잇몸과 치아/턱의 뼈만 전문적으로 보는 치과의사가 따로 있다는 것을. 그럼 충치치료부터 신경치료까지 그 자리에서 다 하는 한국의 치과의사 면허증은 전지전능 얼마이티 라이센스라는 말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각각의 치과 전문의들을 방문하면서 환자로서 느끼는 배신감은 이런거다. 똑똑한 사람들이 그리 오래 공부하고 훈련해 놓고, 이 문제의 원인을 모를리가 없을 텐데, 환자를 이리 저리 돌리는 이유가 뭔가 말이다. 자신의 전문영역을 벗어나는 분야에 대해 언급하기를 삼가해야 마땅하다는 윤리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영역들을 전문화 세분화 해놓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까지에 소요되는 비용과 최종결정은 환자가 전적으로 부담하게 만들어 놓은 시스템의 문제다…. 라는….그리고 일하기 싫어하고, 책임지기 싫어하는 이 사람들의 특성도 있는것 같고.

실제로 심리학자로 교육청에서 수련과 인턴과정을 거치면서 경험한 바도 다르지 않다. 미국의 학교에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양호교사 외에도 한국에서 자라면서는 겪어 보지 못했던 여러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우선은 학업을 못따라가거나 다른 아이들의 학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을 찾아내서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고, 치료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학생이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도록 특별 규칙을 설정하고 조율하는 것이 학교에서 일하는 심리학자의 일이다. 선생님이나 부모가 학생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면 사이칼러지스트에게 의뢰가 오고, 사이칼러지스트는 학생의 지능, 학업, 성격, 행동 전반에 관한 심리평가를 수행하여 문제의 정확한 원인과 대책을 마련한 보고서를 작성해 해당 학생의 특별교육 전반을 관리한다. 심리적이고 정신과적인 부분만 전담하는 clinical psychologist 임상심리학자들과는 달리, school psychologist 학교심리학자들은 영어와 수학을 못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도, 영어를 잘 하고 수학을 잘 할 수 있는 교육방법을 각 과목 담당 선생님들에게 제시해야한다. 임상으로 석사를 했고, 정신병리와 치료가 임상 경험의 대부분이었던 내게는 이부분이 제일 어려웠다. 그리고 diagnostician이라고 하는 진단평가사들은 의뢰된 학생의 지능과 학업평가를 부분적으로 하며, 특별 관리 되는 학생들의 교육계획 전반을 담당한다. 그리고 또 간호사, 언어치료사가 있고, 직업치료사, 특수교사와 특수교사 보조교사들이 있다. 하여간, 어느 학생이 어떤 문제로 의뢰가 되었느냐 여부에 따라, 위에서 말한 전문 선생님들과 교감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로 커미티가 구성되고 학생의 특별관리와 교육을 위한 회의에 들어간다. 일단 학생의 학과 교육 외에 추가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 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3개년 계획이 세워지고, 매 3년마다 학생은 재평가를 받아, 그간 받아온 추가적인 도움을 계속해서 진행할 것인지, 그만 받아도 될만큼 충분한 진전이 보였는지를 결정한다.

SCHOOL PSYCHOLOGIST

그렇게 고급지식들을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전에 나와서 겪게되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다. 파악한 문제에 대한 의견제시를 최소한으로 할 것. 또는 전문가의 윤리로서 말은 해주되 완곡어법으로 말할 것 등을 배운다. 이유는 학교라는 공간은 다수의 전문가들이 커미티를 이루어 팀으로 일을 하는데, 내가 굳이 사이칼러지스트로서의 견해를 이야기해 커미티의 다른 맴버 (예를 들면, 언어치료사) 에게 더 많은 일을 하게 만들 이유는 없는 것. 일을 늘리게 되면 그 사람은 힘들어지고, 그렇게 되면 팀웍이 깨지고, 그렇게 되면 내년에는 배당학교가 바뀌게 될지도 모르니까 겸손함의 옷을 입고 자기의 바운다리를 넘어가지 않는 것이 예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생이 학교적응에 곤란이 있는 것이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내가 할 일없다.”라고만 이야기 해. 그 문제의 원인이 언어발달의 결함이다 라고 콕 찍어서 말하지는 마. 언어치료사가 “아마도 내가 봐야할 학생인것 같다고 스스로 나서기 전까진…” 이런 암묵적인 강령. 이런 식이라면 참 일하기 간편하다. 그러면 언어치료사가 “난 그래 생각 안하는데..”라고 발 뺄 경우 정작 학생의 어려움은 어쩌고? 최종결정과 시간 비용은 다시 부모와 학생자신들의 몫이다. 그렇게 다양한 전문서을 가진 치과 의사들이 “난 잘 모르겠는데, 저 사람한테 한번 가보지?” 라고 하며 나를 엔도돈, 페도돈에게 패스하는 한달간, 나는 “내일 아침이면 나는 죽어있겠구나.” 라고 생각할 만큼 통증에 시달렸다. 주체로 겪게 되건 객체로 겪게 되건, 이런 식으로 일이 전개되는 것은 참 많은 심리적 댓가를 치르게 한다. 어렵다.

뒤쳐지는 이들이 뒤쳐진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기회를 잃게 해서는 않된다는 것이 미국 교육법의 근간이다. 대단한 교육철학이고 대단한 시스템이 아닌가. 만약에 우리아이가 이런 교육을 받아야 한다면, 그간 낸 교육세가 아깝지 않을 뿐 아니라 많은 부모들은 학교에 더욱 많은 기부금을 낼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서 있는 Gifted and Talented로 분류된 학업적성이 뛰어난 학생들에게는 이런 류의 한발 더 나아간 교육 프로그램이 혜택이 조금도 없다. 우수한 아이들은 가면 놔둬도 우수한데 뭘 더 해주리…? 이름만 Gifted and Talented라 붙여줘 아이들 자존감을 최대치로 키워주는 것 외에는 실질적인 플러스 교육은 무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일 엉터리로 하는 전문가 행세하는 사람들을 겪어서 기분이 몹시 않좋은 날은, 또 눈을 돌려 금융기업들, 쇼비지니스 산업의 행태를 보면, 이 나라는 돈의 논리만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매카이며, 근본도 없고 곧 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마음 차분할 때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이런 극히 전문화 분업화된 시스템과 교육제도를 꼼꼼히 들여다 보면, 그렇게 함으로써 인프라와 고용창출을 최대화 하고, 좀 덜 똑똑해도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당당하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사회를 꾸려가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또한 “만인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개인이 인간으로서 가진 권리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있으며, 개인은 노력하는 한 원하는 바 무엇이나 될 수 있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라고 독립선언문에서 주창한 이 나라 건국의 근본 철학이 구현된 실체가 아닌가. 그것은 어쩌면 “여럿이 함께…. 대동단결 대동투쟁..”이라는 모토로 대변되었던 90년대 대학시절의 우리의 지향과 맞닿아 있는것이 아닌가? 물론 우리는 “대충단결 대충투쟁”이라고 읽기는 했었다. 지금의 미국의 전문가들이 대충단결 해서 대충 일하는 것과 똑같이… 여럿이 함께 천천히 나아가는 시스템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감당해야 하는 반대급부는 개개인의 예리함과 날렵함은 감춰 두어야 한다는 것. 정작 조직이나 시스템의 상부로 가게되면 바운다리를 넘나들며 통합하고 새바운다리를 창출해 내는 개인들이 빛을 발하고 조직을 이끌기 되겠지만 말이다…

히비스커스와 수국으로 단장하며 여름을 보내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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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씨와 그의 동료들이 다녀간 이후 앞마당엔 다시 꽃으로 색깔이 입혀졌고, 관목들도 정돈되어 집의 외양이 한결 정돈되어 보인다. 색의 조합은, 당장은 히비스커스가 내년 까지 꽃을 피울것이고, 내년 초봄엔 푸른색이거나 핑크색의 수국이, 그리고 비슷한 시기나 조금 더 지나서는 나일강의 백합이라고 불리는 agaphanthus가 굵은 보랏빛 꽃대를 피워 올릴 것이다.

거의 7년 만에 다시 들여 온 나의 열정 가득한 히비스커스 친구들과 더불어 식물계의 물먹는 하마라 할 수 있는 수국 친구들도 함께 왔다.  접시꽃을 닮은 열정적인 히비스커스를 마주친 것은 텍사스에 내려온 첫해였다. 그러나, 접시꽃은 evening prime rose라 하는  달맞이꽃 과 같은 종류이고,히비스커스는 Rose of Sharon 이라고 불리는 무궁화과라 전혀 다른 꽃임에도 둘은 어느정도 닮아 보인다.

마음 어렵던 텍사스에서의 첫해, 우연히 눈에 띈 히비스커스의 화려한 자태에 반해 화분을 하나 현관 입구에 들여 놓았는데, 꽃이 끊임없이 피고지고 하는 것이, 당시 낯선 동네와 살림을 꾸려놓고 갈짓자를 걷고있던 마음에 작은 위로를 주었던 친구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그맘 때, 동원이가 조지아 오키프의 테마를 흉내내어 그린 꽃에 길고 튼튼한 꽃술을 그려 넣었던 것이 무척 아이러니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실은 히비스커스의 강렬한 꽃술을 매일 현관에서 보면서 등하교 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해 겨울 새로 지어 이사 들어간 집에서 불어닥친 혹한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얼어버렸고, 이듬해 봄 내도록 혹여 다시 순이 나려나 오래 기다렸으나 끝끝내 마른 가지만 바스러져 버렸던 아쉬운 기억이 있는 꽃이다. 언젠간 다시 들여야지 했었으나 그간 너무 바빴고, 다시 흙을 파고 꽃을 심는 일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힘들기도 했었다. 정원일이 얼마나 강인한 체력과 단단한 근육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한 일인지 아는 사람은 알것이니. 실은 어제도 수국을 좀 더 시원한 그늘로 자리를 옮겨주다 어깨를 삐끗하고 말았다. 은근히 아프고 팔을 크게 움직이지 못한다.

색깔도 그러하거니와 일년내도록 꽃이 피고 지기를 한복하는 무척 정열적인 열대꽃이다. 무궁화과에 속하는 꽃이라 남다른 반가움이 있지만 정작 나는 대한민국의 국화인 무궁화에겐 그리 큰 애착을 못느끼고 자랐던듯 하다. 우선, 한국에서 자라면서 무궁화는 아무집 앞마당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리 흔한 꽃은 아니었고, 핑크색을 띈 꽃의 빚깔이 살짝 젖은듯한 차거운 톤이라고 하기에도 형용이 좀 어려워, 어린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애매함이 있는 꽃이었다.

오히려 나에게는 봄이면 야산에 지천으로 피어올라 온 산을 짙은 핑크빛으로 물들이던 진달래가 너무나 강렬했고, 연산홍 또는 철쭉의 짙은 색과는 달리 윤이나면서도 은은한 그 색깔도 무척 인상적이었기다. 해서 왜 우리 국화가 진달래가 아니라 흔히 보기도 쉽지 않은 무궁화인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를 자주 보았던 곳은 캐나다의 벌링턴에서였다. 정말 그랬었다. 놀랍게도 많은 가정들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정원의 꽃을 가꾸는 캐나다의 그 동네에서는 서너집 건너 한집마다 서늘한 핑크색의 무궁화가 담장을 이루고 있었다. 어쩌면, 덕분에 우리의 첫 정작지에 마음을 붙이기가 조금은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골목마다 Rose of Sharon이 바람에 잔잔히 일렁이던 봄의 그 호숫가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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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색만 있는줄 알았는데, 귄터씨 왈, 오랜지와 핑크도 있다며 고르라기에 오랜지 색 네 그루를 심어달라 했더니 오랜지가 흔치 않더라며 붉은 색 두 그루와 함께 섞어 왔다. 며칠을 두고 보니 역시 붉은 색은 왕성히 꽃을 피워 올리는데 오랜지색은 좀 침착하고 느리다. 그래도 괜챦아…집에 들어오는 길, 현관 앞 활짝핀 오랜지색 히비스커스 꽃과 눈을 맞추면 오랜지맛이 나는 탄산 음료를 마신 듯이 마음이 청량해진다.

(2) The Streets and the Street Gardens in New York- Summer 2015

거리의 정원

지평선의 한계를 밀어내며 넓게 펼쳐져 있는 휴스턴의 근교 도시들의 특징은, 새로 개발된 대부분의 동네가 그러하듯이 모든 것이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고, 구획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나즈막하다. 고층 건물들이 불러 일으키는 교통정체나 복잡함 따위는 없다. 주민들의 일상은 너무나 규칙적이고 규율에 따른 것이어서 예측에서 벗어난 삶이란 좀체 일어나기 어렵다. 주민 대다수가 계획되고 구획된 자연의 일부가 되어 표현욕구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며 굿 시티즌으로 조용조용히들 살아가는 듯하다. 흔히들 말하는 서버번의 졸리는 생활인 것이라고나 ….cropped-img_7593.jpg

이에 반해, 거대한 매트로폴리스가 주는 또다른 매력은, 웅장한 마천루의 숲이 드러내는 위용과 인간의 편의를 위해 고안된 각종 시스템에서 발견되는 인간 사고능력의 결집은 물론, 거리의 구석 구석에서 찾아지는 잔잔한 생각의 흔적들 때문이다. 타임스퀘어의 육중하고 압도적인 회색 빌딩 숲이 피로하게만 와닿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큰 건물들 입구와 사이드 공간에 배치되어 “앉아 쉬었다 가세요.”라고 발길을 잡는 휴식 공간들과 횡렬로 주주룩 심어져 있는 세련된 모양의 나무들과 그들의 잎사귀, 예쁜 형태와 색깔들 때문이다. 뉴욕의 거리에는 부드러운 하트모양이나 동그란 모양을 한 잎사귀를 가진 수종이 많이 눈에 띈다. 부드러운 잎을 단 나무를 심기로 맘 먹은 조경전문가들의 손길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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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대도시의 단조로운 서버번에서의 생활을 일년만에야 벗어난 우리는 도시를 느끼고 싶어 거리를 걷기로 한다. 메디슨 에비뉴에 주차를 하고 매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 거리에는 가로수를 둘러싼 조그만 미니 화단들이 어설프게 만들어져 있고, 그 안에는 팬지나 베고니아가 색깔 맞춰져 나즈막히 심겨있다. 지나가는 강아지들의 오줌을 방지하기 위한듯이 보이는 투명한 방패막이도 무릎 높이로 쳐져있다. 땅값 비싼 고층 아파트 주민들의, 가든을 향한 갈구가 느껴져 귀엽다. 생각하는 존재인, 잔머리 굴리는 인간의 본성, 새삼 발견하고 반갑다.

꿈을 실현하고자 이상에 한발 더 가까운 곳으로 옮긴 친구의 보금자리는 맨하탄의 서쪽 끝, 허드슨 강을 바라보는 배터리 팍에 위치하고 있다. 친구가 베터리 파크 시티의 주민이 된 덕분에, 맨하탄의 녹음과 자연, 그리고 거리의 정원을 감상할 기회가 생겼다. 눈길 닿는 곳마다 싱그러운 초록과 각양각색의 꽃들로 가득차 있어, 도심 속 이 자연광장의 아침과 저녁 풍광은 무척이나 아름답다.번화와 세렴됨의 정도로는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마천루로 가득차고 최신식 주거단지로 들어차 있으며 바다를 마주하고 요트장이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브룩필드 쇼핑센터 전경과 우리가 살던 부산의 옆 동네, 해운대가 겹쳤다. 잠시 고향에 온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옛날 동원이가 아기였을 때, 집에서 가까운 요트경기장에 자주 놀러가곤 했었다. 평소엔 한적한 그곳에 가서 남편 운전 연수도 시켜주고 (운전면허 날짜까지 받아놓고 이곳에서 공짜 연수를 해 주었건만, 남편은 끝내 면허를 따지 않고 이민길에 올랐다), 비오는 날이면 정박해 있는 요트들을 바라보며 차안에서 빗소리를 듣고 비에 젖는 바다를 바라보곤 했었다.  재미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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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가 중심의 거리 위에 펼쳐진 거리의 정원은 인상적인 스케일. 초고층 건물들 앞으로 인도가 운동장처럼 넓게 위치해 있는데, 그 위에 강아지 공원도 있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가든도 있고, 놀이터도 있다. 맨하단 서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west avenue를 끼고 있는 이 인도와 주요 차도 사이를 꽤 규묘가 큰 화단과 가로수 길이 차단하고 있는데, 차도와 차도 사이에는 또다시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는 거대한 장미 정원이 길을 따라 놓여있다. 그러니까 이쪽편 건물에서 저쪽편 건물까지 가기 위해서는 강아지 공원을 지나고 장미 화단을 건너서 5차선의 하행 차선을 건너고 도로의 중앙에 다다르면 또 장미 정원을 지나고 5차선의 하행 차선을 건너고 그쪽에 놓인 무릎높이의 화단과 가로수 사이를 지나야 한다. 하하하 …. 그 거리의 이름이 맨하탄 북쪽에서는 9A이고 맨하탄 중부에서는 West로 바뀌어 남쪽 끝 배터리 파크에 이른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동네중 하나일텐데, 그 비싼 땅의 적지 않은 부분을 이렇게 거리의 정원으로 할애하다니, 맨하탄 남서부,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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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리 팍 커뮤니티 양봉단 ??

베터리 팍 커뮤니티 양봉단 ??

(1) Hello again Manhattan _Summer 2015

그러려고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작년에 이에 올해도 아이들이 방학을 한 다음날 온가족이 곧장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신체 여기 저기를 보수 유지하는 일이 중요해질 만큼 나이를 먹다보니, 올 초에는 튼튼한 어금니를 영구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덴티스트로 성업 중이신 남편의 고등학교 선배님께 도움을 받고자 뉴욕행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굳이 휴스턴에서 해도 될 일을 뉴욕까지 날아가서 하는 것은, 그곳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어렸던 20대와 숨쉴틈 없이 바빴었던 30대에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던, 사람들과의 인연들을 발견하고, 또는 끊어진듯 했던 인연들을 다시 연결하는 가운데, 내가 이번 삶의 어디쯤에 걸어가고 있는지 짚어 볼 수 있는 여행이다. 맨하탄 첫방문은 큰 아이가 네 살, 작은 아이가 두 살 기저귀를 땐 기념으로 감행했다. 2005년 1월 5일, 프리징 레인이 내리는 새벽 워털루 온타리오를 출발해, 열 시간 운전을 해와서 센트럴파크 입구에 위치한 살리스버리 호텔에 일주일간 묵었었다. 미국땅을 처음 밟은 때이기도 했다. 두 번째 방문은 그 다음해 여름 한국 방문길에 잠시 들러 연주를 만나고 브루크린 퀸즈에 있는 호텔에 이틀을 머물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번의 방문에서 모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이번에도 라과르디아 공항이다. 1층 러기지 클레임으로 내려오자 마자 큰 아이가 좋다 나쁘다의 뉘앙스 없이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 oh…. city smell!” 공항청사와 거리 사이가 매우 가깝게 설계가 되어 있다보니, 버스의 매연과 담배냄새 온갖 냄새들이 섞에 건물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냄새로 도시를 먼저 느낀다. 공항에 내려 셔틀버스로 이동해, 일주일간 우리를 태우고 다닐 차를 랜트한 다음 퀸즈를 벗어나 맨하탄으로 향한다. 랜트한 차는 진주빛 뷰익 라크로스 세단으로 무지 넓은 선루프가 6월의 청명한 대기를 실내에서 환히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 마음이 밝아진다. 퀸즈는 참 오래된 동네구나 생각하며 거리를 빠져나온다. 신선한 공기를 호흡해 볼까 하고 선루프를 열자 아이들은 코를 막으면서 말했다…”아…시티 냄새가 너무 나..”

정통 쥬이시들이 모여 살 것으로 여겨지는 퀸즈의 동네를 지나며 마주치게 되는 것은 머리를 땋고 까만 전통복장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에서, 곰방대 물고 갓 쓴 하얀 청학동 할아버지가 떠오르며, 그들의 고집과 신념이 느껴져 나는 잠시 큰 숨을 고른다. 유태인들의 고집과 집념과 그 외에 그들을 수식하는 여러 형용사들은 귀에 익고 익지만, 그렇게 많은 유태인들이 백년 전 영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차림으로 눈앞에 활보하는 모습을 보니 그들에게 붙어다닌 형용사들이 새삼 실감이 난다. 또 다른 류의 퀸즈 주민들의 고집스러움은 건물 외벽이나 높은 철교의 사인보드 마다 칠해진 그래피티에서 발견된다. 세월의 때가 뭍은 건물들은 죄다 형형색색의 페인트로 악센트 회장을 하고 있다. 종이나 캔버스 위에 편하게 그려도 될 것은 그렇게 한사코 벽타고 올라가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물론 종이와 건물의 벽은 그림을 그리기에 판이한 매체이긴 하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일종의 거리 예술에 대한 나의 첫번째 인상은 그림의 내용보다도 행위자의 의지에 더 주의가 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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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아일랜드로부터 맨하튼으로 진입하기 위해 브루클린 브리지를 향한다. 다리 진입로에서 그 너덜너덜해진 노면 위에 앉은 세월의 더께를 느끼며 아악 소리가 날 즈음에, 시야에 들어오는 나즈막히 펼쳐진 공동묘지…. 망자들의 커뮤니티는 그 땅에 처음 뭍혔을 어떤 이민자의 시대로부터 이 지역의 변화를 조용하게 지켜보고 있을 터인데, 다리 위로 강을 건너는 나는 그 땅에 처음 뭍혔을 망자의 살아 생전의 삶을 상상해 본다. 죽을 고생을 하며 여러 날을 배타고 대서양을 건너왔겠지 (우리는 텍사스로부터 비행기 타고 세시간만에 왔는데…. 세월이, 기술이 경이롭다). 그들의 첫 몇해도 무척 고단했겠지. 퀸즈에서의 삶은 그들에게 만족할 만한 것이었을까.. . 무슨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을까.. 구체적으로는 상상이 가지 않지만, 앞선 세대의 브루클린 주민들의 삶의 모습은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Betty Smith가 쓴 A Tree Grows in Brooklyn에서 읽었던 장면들로 채워본다. 가난한 유럽 이민자들의 100년 전의 삶의 모습과, 꿈을 향해 자라나는 한 소녀의 성장기를 무척 감칠맛 나게 그린 이 소설을 나는 매우 매우 좋아한다.

브루클린 브리지를 타고 맨하탄 남부 금융 디스트릭트로 들어오며, 시야로 쏟아져 들어오는 마천루들 사이로 보이는 과거와 현대의 조화, 그리고 그 많은 행인들의 행렬에 잠시 눈이 아찔해진다. 이것은 휴스턴 교외 지역의 느긋하고 지루하리만치 조용한 생활에 젖어있던 지난 세월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져 있던 풍경이다. 도시의 거리는 바이크를 타고 달리고, 거리 음식을 사 먹으며 햇살을 받으며 금요일 오후를 즐기는 행인들로 가득하다. 행인들은 거리의 나무의 수만큼이나 많다. 백수십백년의 더께가 앉은 워터 스트리트의 거대한 빌딩숲 사이를 조심조심 운전해 빠져나가는 동안, 그 거리의 백여년 전의 풍경이 또 다시 겹쳐지고, 거리를 바삐 움직이는 현대의 어린 누들스들을 만난다. 맨하튼이 전 세계로 부터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이유야 백가지도 더 될테지만, 이 도시가 나에게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인간 정신활동의 역사를 총체적이고도 가시적으로 압축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섬은 숨 쉬는 존재의 욕망과 표현 욕구를 압축하여 단층의 횡단면처럼 보여준다. 펄펄뛰는 욕망들이 압축된 살아있는 단층의 횡단면. 지금은 대중의 뇌리에서 지워진 이름이겠지만, 20세기 말 한반도의 노동자 혁명을 꿈꾸던 시인 박노해의 한 줄 맨하탄 감상기는 정곡을 찌른다. 지구상의 가장 열등한 것들이 모여,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것들을 구현해 낸 맨하탄에서 인류의 유토피아를 발견한다던 …… 지당하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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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_ summer 2014

10479149_10152544625607193_4616387709710526675_n2014년 여름. 휴스턴의 날씨는 예년의 상태를 되찾아, 하루 한번 꼴로 내리다 시피하는 T shower로 타는 더위를 식혀가고 있다. 예년 같았으면  이른 봄에 이미 만개했을 나일강의 백합이라고도 불리는 agapanthus  도 이제서야 만개하고, 꽃나무들이 여유롭게 바람에 흔들리는 휴스턴의 초여름 풍경이다. MOMA의 5층에도 모네가 그린 agapanthus 정원이 걸려 있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6월초의 서늘하기까지 하던 싱그럽고 환하던 뉴욕의 날씨가 다시 그립다. 코네티컷을 가로지르던 가늘고 길게 굽이치던 Merritt parkway의 마음을 설레게 하던 예쁜 길들과 이른 유월 아침의 케이프 코드 앞바다. 아틀란타 바다의 시원하던 대기가 다시 그립다. 케이프 코드의  짧지만 경렬했던 아침이알려준 것은  한반도의 동해나, 아메리카 대륙의 동해나 역시 동해바다는 시원하고 깨끗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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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던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주부터, 다시 스쿨 디스트릭트로 복귀해 미취학 아동들의 자폐여부를 진단하는 일을 시작했고, 잠깐 긴장은 했지만 곧 적응해 이제 다시 한숨을 돌리는 중이다. 6월 중순에 시작해서 한달간 하게 될 일은 언어와 정서/사회성 발달에 이상을 보이는 2세 이상, 5세 미만인 아동들의 자폐여부의 진단해서, 자폐나 이상이 확인 되었을 때 그 아이들이 가을에 Preschool이나 kindergarten에 진학해 교육과정을 큰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도록 개별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일이다. 긴장에서 풀려나, 월초의 여행기억을 다시 더듬어 본다.

거의 10년 만에 다시 찾은 뉴욕과 대륙의 동쪽을 돌아보는 여행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거창할 것도 없이, 한국과 비슷한 위도에서 느낄 수 있는 대기와 다양한 수종으로 가득찬 산과 흐르는 물을 마주하고, 역사가 스며있는 동부의 거리풍경과 산으로 바닷가로 아름답게 뻗어은 길들을 달리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고자 하는 단순한 것이었지만, 놀랍고도 예상치 못하게 사람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수만리 이국땅, 단지 출신 고등학교가 같다는 이유로 인터넷을 통해 안부 전하게 된, 일면식도 없었던 우리들을 환대해주신 선배님들을 만나면서 “사람”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70년대 한국에서 나고 자라 20대를 보내온 우리는 “사람이 재산이다.” 라는 말을 외치며 늘 만남의 자리를 만들고, 갖가지 성장통을 함께 겪으며  성장해 왔었다. 하지만, 서른을 바라보며 태평양을 건넌 이후로는  사람이라는 울타리를 잃어버리고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 놓는 막역한 관계란 기억흔적이거나 어린 시절의 향수로만 기억을 하고 지냈다. 그런데 뉴욕에서 그것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은 정말 예상치 못했던 행운이었고, 사람들의 울타리는  지난 시간 속에 박제된 기억의 흔적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혼잣말을 뇌어 본다. 이래서 말은 텍사스로 보내고 사람은 뉴욕으로 보내라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