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2) 아서 갠슨의 움직이는 조형물을 통해 본 아스퍼거의 내면세계

지난 여름의 뉴욕과 동부 여행에서 보스턴을 향한 여정의 목적지는 MIT Museum으로 정했다.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내아이 둘과 엔지니어인 남편이 우선적으로 흥미를 보일 장소는 아마도 이곳이 아닐까 하여서다. 숙소로 있던 뉴저지의 친구네 집을 떠나 죠지 위싱턴 다리를 건너 세 시간 반 drive, 메사추세츠 에비뉴256번지에서 대면한 것은, Arther Ganson이라는 작가의Kinetic Sculptures exhibition이었다. 생소하고 낯선 쟝르라 흥미가 돋우어졌고, 움직이는 작품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는데, 우선 그의 움직이는 조형물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작품명: 생각하는 의자 Thinking Chair.

시작점도 끝점도 없는데… 두 다리로 뒤뚱거리며 느리게 걷고 있는 동전 크기의 노란색 나무 의자. 작고 귀여운 노란 의자가, 울퉁불퉁한 암반 위를 끝도 없이 느릿 느릿 걸어가는 형상의 작품. 동력은 의자에 연결된 메탈 축과 그에 연결된 체인과 여러가지 기계들의 연쇄작용이다. 의자는 기능은 T사람들이 앉아서 쉬는데 있지만, 역설적으로 의자가 두발로 걷고, 생각을 한다니… 호모 에릭투스,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왠지 모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정작 작가는 이 작품을 자화상이라고 한다. 자신이 깊은 생각에 잠길 때면, 자신의 스튜디오 옆으로 난 숲 길에 놓인 납작한 암석 위를 원을 그리며 빙빙 돌면서 걷고 있는 자신 발견한다고, 그러한 자신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적고 있다. 혼자서 산책을 하고, 천천히 걸으면 생각이 실타래 처럼 솔솔 풀려나가는 것을 나도 경험하기는 한다. 길 위에서면 생각이  자유로와지는 이유?

 

작품명: 위시본이 달린 기계. Machine with wishborn

가느다란 위시 본이 뒷걸음으로 끄는 것은, 거대한 바퀴를 가진 자전거 위에 타고 있는 사람. 자전거는 자신의 몸보다 몇배나 크고 동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탈것 임에도 불구하고 이 크기 조차한 온전한 파워풀한 탈 것 위에 앉은 사람을, 위시본이 두 발끝에 의지해 아날로그로 끌고 가는 아이러니. 작품이 내게 던지는 메세지는 ‘ 그대는, 나는, 우리는 호모 파베르’. 쉴틈없이 노동 해야하는, 박진감 넘치는 그러나 알고보면 고달픈 인생.

http://video.mit.edu/watch/machine-with-wishbone-3479/

작품명: 꽃잎. Machine with Artichoke Petal

쉼없이 돌아가는 둥근 바퀴 위에 두 발끝으로 선 마른 꽃잎은 구부정한 실루엣으로 고개를 숙인 사람의 형상. 왠일인지 시지프스의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동력이 다 할 때 까지 쉬지 않고 두 발 움직여 걸어야 하는 것은 돌아가는, 바퀴 위에 선 마른 꽃잎의 본질. 다시 한번, 직립보행하며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창의적이지만, 쉽지많은 않은 운명을 이야기하고자 한 걸까?

Arthur씨의 인터뷰 비티오 클립은 아래의 주소에.

http://video.mit.edu/watch/gestural-engineering-an-interview-with-artist-arthur-ganson-26968/

캐나다의 어느 유미주의감독은 Arthur Ganson의 작품들을 모아 짧은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http://randallokita.com/rlo/Machine_with_Wishbone_directed_by_Randall_Okita.html

작가는 버려진 인형, 장난감 의자, 마른 꽃잎 같은 여러가지 다양한 매체들을 사용하여 움직이는 조형작품들을 만들었지만, 작품들을 관통하여 일관되게 전해지는 것은, 무생물체에 생명을 불어 넣어준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직립보행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된 인형과, 꽃잎, 의자는 이제 무한반복되는 일상의 노동을 해야하는 운명이 된 것….. 이런 생각들이 들자, 나를 포함한 두발로 걷는 존재들에 대한 왠지모를 연민이 일렁이기 시작했고, 생각하는 노란 의자에게, 구부정하게 걸어가는 마른 꽃잎에게, 그리고 고도에 앉아 고독에 잠긴 손톱크기의 남자에게, 위로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얘들아.. 잘하고 있어. 그리고 잘 견디고 있구나…

의인화된 모든 메체를 움직이는 동력은 수학적이고 패턴화 된 기계들의 연쇄작용이지만, 그 무한 반복되는 메탈로 만들어진 축과 체인들의 연쇄 작용을 통해서,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의 작품들은 독창적인 아트이면서도 인문학의 기계적이고도 시각적인 구현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는 이미 널리 알려진 작가이고 TED Talk 올라와 있는 작가의 자기 작품 소개를 보자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은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소년이라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여러웠고, 말로 하는 소통하는 대신 어느 구석에 틀어박혀서 뭔가 작은 기계부품 조각들을 연결해 움직이는 것들을 만드는 것이 편했다라고.. 그래서 하염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을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고 나중에 커서는 자신이 만든 움직이는 것들을 통해서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을 해석하고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몫이고, 자신은 그냥 만드는 것이 좋고 재미있어서 계속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애매모호함을 떨쳐버릴 순 없다는 것.

이와 같은 본인의 소개를 듣고 보니, Arthur씨는 필자에게 익숙한 몇가지 임상적 진단 증상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선은, 무한 반복으로 움직이는 체인과 축, 바퀴같은 물체의 부분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천착으로만 보자면, 흔히 보는 아스퍼거나 자폐 증상의 하나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기계적 메커니즘의 반복과 연쇄작용을 통해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했고, 그의 방법은 여느 조형 조각 작품들보다 혁신적으로 느껴진다. 또 하나, 자화상이라고 표현한 Thinking Chair 역시, 깊은 생각에 잠겼을 때, 원의 형태를 그리며 빙빙 돌면서 걷는 행동을 반복하는 자신을 표현한 자화상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그는, 아스퍼거나 자폐를 가진 개인들이 흥분하거나 정신 활동이 고양되었을 때 보이는, 상동증적 행동 stereotyped/repetitive movement을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물론, 여기까지만 보았을 때, Arthur Ganson씨가 보이는 증상은 양적으로는 아스퍼거라는 진단을 내리기에 매우 부족하고, 그가 아스퍼거일것이라 추측하는 것이 이 글의 포인트도 아니다. 그가 한글을 읽을 수 있어, 이 글을 읽는다면, 당신 무슨 선무당 사람잡는 소리냐라고 화를 내실지 모르만, 심리학자의 눈을 통해 본, Arthur Ganson씨의 삶과 작품세계는, 앞서 소개했던 지극히 남성적인 브레인, 반복되는 패턴과 기계적인 작동원리에 편향이 된 systemizing brain의 전형적인 구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폐나 아스퍼거의 핵심적인 진단 증상은 언어를 통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곤란이다. Arthur Ganson의 작품들을 통해 볼 수 있다시피, 언어를 초월하는 의사소통의 도구는 그림이나 예술이라는 흔하디 흔한 표현이 진리임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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